일 권태기 극복기

꽤 오랫동안 내가 하는 일(한국어 교육)에 권태기를 느껴왔다. 여기에 딱히 해결책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그저 나의 나태함에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내 자신을 푸쉬했을 뿐이다.

물론 새로운 것들도 많이 시도해봤다. 이 웹사이트가 그 중 한 가지다. 나 자신을 계속 채찍질하며 웹사이트를 구축했고, 얼추 사람들에게 보여줄 준비가 되었을 때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나의 열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언젠간 돌아오겠지, 돌아오겠지, 기대해봤지만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지불받고 진행하는 1:1 수업 외에는, 가끔가다 한 번 씩 영상을 만들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권태기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이유는, 근본적인 원인이 그저 나의 게으름이라고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게으름만 해결되면 권태기가 자연스레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고, 그 게으름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속 푸쉬해왔던 거다. 하지만 만약 그 푸쉬 때문에 계속 나태해지고 있는 거라면..? 억지로 푸쉬하니까 하기 싫어지고, 하기 싫으니까 게을러지는 거라면..? 그간 이렇게는 연결시켜보지 못했다.

내가 열정을 갖고 열심히 쌓아온 무언가가 어느 날 부터 더 이상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고 억지로 하는 느낌이 든다면, 미련을 버리고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아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이건 사람마다, 또 내려놓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다. 나야 물론 언제든 자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1인 콘텐츠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거다. 그러니 뭐든 섣부르게 때려치라는 훈수를 두려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나 열정이 예전같지 않다면 그것과 일정 기간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는 거다. 여기서 거리란 물리적인 거리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거리도 뜻한다. 즉, 한 번 거리를 두고자 결정했으면 그것에 대한 미련을 가지면서 머릿속에서 곱씹는 것 또한 중단해야 한다는 거다.

나 같은 경우는 물리적인 거리는 뒀지만, 정신적인 거리를 두는 데에는 실패했다. 유튜브 일에는 육체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동종업계 크리에이터들에게 밀리면 안되는데..’ ‘쉬는 기간이 너무 길면 안되는데..’ ‘뭐라도 만들어야 되는데..’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해봐야 하나..’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으나 머릿속에는 그것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니 나에 대한 성찰이 갱신될 수 없었다. 매번 똑같은 생각으로만 바쁘고, 그 생각을 현실에 옮기긴 싫으니 움직이진 않고. 자연스레 아무런 성과도, 발전도, 성장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교육이 이렇게 오랫동안 질리는데, 아마 이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새로운 업종을 찾아 개척하라는 우주의 뜻일 수도 있겠다.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계속 나를 제자리에 붙잡아두며 질식시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제서야 한국어 교육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정신적으로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주간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했다. 하고 있던 경제적인 활동도 거의 내려놓았다. 아무런 의무감 없이 그저 내 마음이 가는 것들 위주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영화 보기, 독서, 그리고 영어와 중국어 공부가 내 활동의 주가 되었다.

그걸 보면서 나에 대해 다시금 깨달은 게 있다. 내 꿈은 원래 작가였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어떤 스토리를 감상하며 감정을 느끼는 활동을 좋아한다는 것. 그동안 모르는 척 해왔던 이 두 사실이 다시 상기되었다. 돈벌이에 신경쓰느라 묻어왔던 나의 꿈과 취미를 다시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조금 이상하지만, 다시 한국어 교육 콘텐츠 만드는 일에 손이 갔다. 하지만 달라진 건, 예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의 콘텐츠 크리에이팅이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마음을 비우고 나니 다시금 진실된 열정과 창의력이 스물스물 생겨나려고 하는 것이다.

또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원인과 내 성향에 대한 통찰도 얻었다. 바로, 나는 돈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에 의해 움직여지는 단계는 이미 지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돈보다 더 큰 이유가 필요하다. 그게 뭘까? 그저 겉으로 보기에 고귀해보이는 이유가 아닌, 내 온 몸으로 진실되게 느껴지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찾아가는 중이다. 나는 나에 대해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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