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3일차.
오늘 엄마가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셨다.
내가 하는 청소와 엄마가 하는 청소는 정말 다르다. 엄마는 주부 경력이 30년이 넘어서 그런지 살림 요령이 남다르다. 청소도, 요리도.
집이 정말 깨끗해졌다. 공간이 정리되니 마음도 같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우울감이나 무기력이 조금 씻겨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사람에게 의존해야 할 때가 있고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이걸 알면서도 잘 안 되는 이유는 일단 무엇을 부탁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먼저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사람이 싫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싫은 건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의존할 때 따라오는 상처들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남에게 의존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만 보면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기대면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댓가가 있었다. 특히 감정적 댓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혼자 하자’ 주의가 되어버린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외롭지 않다. 특히 이성적인 외로움은 더욱 없다. 데이트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끌리는 사람도 없다. 연애세포가 오래전에 죽었다. 그렇지만 사람과 교류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다 보니 가끔 “친구”가 고플 때가 있다. 그냥 웃고 떠드는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존중해주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내가 나 자신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가족 관계도 조금 미묘하다.
나는 오랫동안 우리 엄마를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어렸을 때 감정적으로 나에게 너무 모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다 기억이 난다. 7살 때 처음으로 엄마한테 싸대기를 맞았던 기억.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에서 영어 발표를 잘 못했다는 이유로 학교 계단에서 혼났던 기억. 그 모습을 지나가는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이 봐서 너무 창피했던 기억. 중학교 때에는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엄마가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머리채를 잡고 때리며 나를 몰아붙였던 일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전화해서 헤어지라고 감정적으로 몰아붙였던 일들.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엄마로부터 정서적인 독립을 쉽게 하지 못했다. 서른 살이 넘어서야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 상처가 있었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다. 엄마도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이었고, 애 셋 키우느라 버거웠을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폭력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동생이 태어나고부터였다. 내가 일곱 살 때. 애를 셋이나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이해한다. 그렇지만 둘째였던 내가 엄마 스트레스의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은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적으로 불안정했고 사회성도 부족했다. 그나마 사회성이 조금 생긴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지만, 그때조차 불안정한 부분이 많았다.
이렇게 쓰다 보니 엄마를 탓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그냥 더 명확하게 보고 있을 뿐이다. 사실 그대로를. “옛날 일이니까” 하며 묻어두었던 기억을 요즘에서야 조금씩 꺼내보고 있다. 심리 치료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꺼내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엄마를 탓하면서도 동시에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 역시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였을 것이다. 여자는 안정적인 집안에 시집가서 애 낳고 살림하는 삶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시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 선호 압력도 있었고 (심지어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셋이나 낳았겠지. 물론 드디어 아들을 낳았을 때는 정말 행복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애 셋을 원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엄마가 여전히 미운 감정도 있다.
지금의 엄마는 많이 차분해졌다. 나도 이제는 충분히 머리가 컸으니 엄마의 가스라이팅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통하지 않는다. 어떤 말은 걸러야 하고, 어떤 행동이 잘못된지 안다. 그래서 이제는 덜 싸우고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다.
원래 엄마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여기서 일기를 마치려고 한다. 글이 너무 길어지면 하나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당분간은 이렇게 가볍게, 의무감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대로 (그러면서도 조금 더 정리된 언어로) 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