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ression

오늘은 우울에 관해서 써보고 싶다.

나에게 단순히 우울감이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이어지는 우울증이 처음 찾아온 건 2016년 초반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우울증까진 아니지만 우울감 자체는 느껴봤다. 그리고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공포감 때문에 죽음을 떠올린 적은 몇 번 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걸 생각했던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엄마는 내 성적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컸다. 하지만 1학년 1학기 내내 나의 성적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엄마한테 많이 혼났다. 엄마를 계속 실망시키거나 혼나고 싶지 않아서 2학기 때는 성적표를 조작해서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는 성적표가 종이로 나왔기 때문에 내가 직접 워드로 성적표를 만들어서 인쇄하면 엄마를 속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조작한 성적표를 보여드리고 난 뒤, 학교에서 성적표 우편물이 집으로 발송됐다는 얘길 들었을 때, 엄마가 그걸 보고 나서 내가 가짜 성적표를 만든 걸 알게 되지 않을까, 그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그날 선뜻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공포감이 밀려왔고, 그때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는 상상을 했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떠올렸던 순간이다.

두 번째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2012년에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귄, 3년 된 남자친구였다. 물론 결국 다시 재회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세 번째는 2015년, 피부병을 앓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이 세 번 모두 우울증 때문은 아니고 그저 막연한 상상, 현실이 두려울 때 튀어나오는 도피적 상상에 가까웠다. “만약 죽는다면 고통이 끝날까?” 같은, 그런 종류의 생각들.

하지만 2016년 초반, 처음으로 존재 자체에 대한 우울, 삶에 대한 기력이 빠지는 느낌을 겪어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느꼈던 게 내 삶의 첫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우울은 아마도 ‘삶에 대한 권태’가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 같다.

그리고 2019년 중후반, 또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때는 내 얼굴 때문이었다. 내 얼굴에는 사실 조금 복잡한 문제가 있다. 단순히 예쁘다, 못생겼다의 문제는 아니고, 이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지금은 여기에 대해 쓰고 싶지 않다.

그리고 2021년, 얼굴과 관련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 하나가 또 생기면서 다시 절망에 빠지고 우울해졌다. 그것 때문에도 죽음을 떠올렸다. 앞으로 계속 겪어야 할 고생이 너무 싫었다.

2022년, 이렇게 우울한 상태를 안고 사는 게 지겨워서 고양이를 데려왔다. 고양이를 데려온 뒤로는 우울증이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2023년 초, 또 얼굴 때문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3년 중반에 내 삶에 ‘대박’처럼 느껴지는 일이 터졌다. 내가 살던 곳 근처에 민간 임대 아파트가 지어졌는데, 아주 좋은 아파트임에도 보증금과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당첨되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내 삶에도 이런 빛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구나.

그리고 그 즈음 여러 출판사에서 동시에 집필 제안을 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책을 쓰고 싶어 했기에 이 연락들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 나에게 정말 큰 기쁨이었다.

2023년 중후반의 일들을 계기로 나는 다시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았고, 그렇게 책 집필과 유튜브 성장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2024년을 보냈다. 매번 행복한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2024년에는 적어도 ‘우울증’이라는 감정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2025년에 다시 우울이 찾아왔다. 너무 열심히 일했는데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끝없이 일만 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받게 되는 “미움”이 주는 좌절감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저 반복되는 삶의 구조에서 오는 지겨움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2025년 4월부터 번아웃과 비슷한 우울이 시작되었고, 그와 동시에 얼굴에 대한 불만이 치밀어 올라서 얼굴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랑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심효정이라는 사람의 삶은 정말 힘들다.” 그런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그래서 2025년 6월, 새로운 고양이를 데려왔지만 (보리는 정말 사랑스럽고 데려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효순이 때만큼 우울증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한때 삶의 의욕을 다시 찾았고 이제는 정말 우울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또 우울이 찾아오니까 그 사실 자체가 또 우울했다. 삶의 반복되는 사이클이 지겹게 느껴졌다. 이렇게 예측 가능한 삶이라면, 과연 삶에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이 우울이라는 걸 어떻게 견뎌낼지, 어떤 것에 열정을 갖고 몰두할 일이 생기면 우울증이 또 자연스럽게 사라질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야 할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최근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1,2>라는 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몇 년간 베스트셀러였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내게 낯선 것도 아니고, 그냥 “책이 잘 팔려서 부럽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분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어떤 생각과 어떤 고통이 그 분에게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몰아갔을까 궁금해졌다.

책에는 그 분의 솔직한 생각들이 샅샅이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라도 숨기고 싶을 만한 감정들을 상담 의사에게 모두 털어놓고, 그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그 사람을 괴롭게 했던 원인은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단순히 “힘내세요” 같은 말이나 어떤 고상한 조언보다, 그런 너무나 솔직한 기록이 내게 훨씬 큰 위로가 되었다. 예전에 내가 우울에 대해 공유했던 영상들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내 아픔을 공유하는 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가분 역시, 책을 낸 뒤에는 또 다른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취약함을 세상에 모두 드러냈지만, 정작 타인의 마음은 다 알 수 없고, 그런 불균형 속에서 사람들을 대하는 부담이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일 뿐이고, 왜 그분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더는 삶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내가 짐작하려 하는 건 고인께 예의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분의 책을 읽고 나서, 내 우울을 스스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더 솔직하게 기록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렇게라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이런 기록이 내게 작은 치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오늘의 글도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쓸 때 마무리가 좋아야 된다는 강박이 좀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라는 감정과 같이 세상에 완벽하게 매듭이 지어지는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에, 오늘의 글도 조금은 흐지부지하게 여기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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