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말 특이한 일이 있었다.
새벽 여섯 시, 안방에 두었던 로봇청소기가 갑자기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해 방 안을 돌아다니는 거다.
가끔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음대로 나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되돌려놓았지만, 계속 반복됐다.
그 순간 나는 이 일을 divine intervention(신의 개입)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울로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나에게
“일어나.”
“너무 힘들어하던 그 아침 일어나기, 지금 한 번 해봐.”
“지금 나가서 운동하고 오면 우울이 조금은 나아질 거야.”
“나는 네 편이야.”
이렇게 신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아직도 100% 그렇게 믿는다.
그 전날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울에 잠겨 있던 나를 구하기 위해
로봇청소기로 나를 깨운 것 같았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아예 꺼두고 잽싸게 일어나 헬스장으로 갔다.
근력운동도 하고 유산소도 하고, 한 25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는데, 샤워실에서 나오니까 너무 추웠다.
(어제는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최고 -1도, 최저 -7도.)
그래서 몸을 좀 녹이려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우니까 다시 우울했다.
‘아… 아침에 일찍 운동을 해도 우울이 사라지지는 않는구나.’
하면서 또 우울에 빠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냥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어나 브런치를 시켜 먹었다.
브런치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픔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인스타 스토리에 최근 우울에 허우적대던 일을 글로 써서 올렸다. 솔직히 많이 긴장됐다.
그렇게 솔직한 아픔을 공개하는 건 오랜만이고,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이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예상도 못했던 사람들이 보내준 진심 어린 DM에 나는 genuinely connected 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면서 삶에 대한 의욕과 생기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나는 무려 강의 세 개를 찍었다.
출판사와 진행 중인 이 강의는 총 40강을 찍어서 보내야 하는데,
우울이 시작된 뒤로는 10강에서 멈춰 있었다.
근데 이 일을 계기로 다시 일할 힘이 생겼던 거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Vulnerability is power. 왜 그걸 이렇게 오래 잊고 살았을까?
노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이긴다.”
“물은 가장 약하지만 모든 것을 이긴다.”
라는 그 명언들.
그동안 나는 너무 단단해지려고 했던 것 같다.
고집도 있고, 우울 같은 감정적 약점을 보이면 평가받을 거라는 두려움에
숨기고 숨겼다. 하지만 오히려 내 약점을 드러내면서 나는 다시 삶의 의욕을 느낀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 우울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우울하지 않고, 살아갈 힘을 다시 찾았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떠오른 구절이 있다. 이건 성경 구절로 기억한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나는 완벽해야 할 필요가 없다.
Connection over perfection.
Connection이 강하면, 부정적인 반응도 그냥 흘러가게 마련이다. Fuck it.
너무 강하게 살 필요 없다.
완벽한 모습만 보일 필요도 없다.
나의 약한 모습, 못난 모습도 결국 다 나다.
그런 모습도 드러내면서 진짜 나답게, 진실하게 살아가야겠다.

